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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5월의 여행
    일상의 기록/2011 2011. 5. 24. 13:31

    6시 칼퇴근, 정상적인 근무를 마치고

    즉흥적으로 탄 속초행 버스.

    그 때 내 가방에는 사무실에서 쓰던 탁상용 거울과

    검정색 슬리퍼

    그리고 초코바 다섯개 뿐이었다.

    어두운 고속도로를 달리는 버스.

    아, 얼마만에 여행이라는 걸.

    게다가 이렇게 무계획하게.

    좋다.


    봉이네서 일박을 하고 아침.

    봉이는 출근하고 나는 봉이 냉장고를 뒤져 이것저것 먹었다.

    세수를 하고 크림을 바르려고 보니 봉의 방에는 거울이 없다.

    탁상용 거울을 TV 위에 올려주고 집을 나섰다.


    집 바로 뒤가 속초항이었다. 30초도 안걸리는, 작은 도로 하나 건너면 바로 바다.

    강원도 바다의 냄새가 난다.

    친가쪽이 강원도라, 어릴 때는 매 해 방학을 동해에서 났다.

    스물한살 때 처음 부산에 갔을 때

    부산 바다의 냄새가 강원도 바다의 냄새와 달라 당황했던 기억이 난다.

    그래, 이 냄새가 강원도 냄새다. 소금냄새.. :)

    사무실용 검정슬리퍼를 신고 등대에 올랐다.

    오르다가 발등이 너무 아파서 전 날 출근할 때 신었던 장화로 갈아신었다.

    계단을 다 오르고 보니 발에 땀이 흥건....

    공기가 안통하는 장화를 다시 벗어버리고 슬리퍼로 갈아신었다.

    무계획한 여행은 이런 폐단이 있구나. 신발 준비를 못했네. @_@


    점심시간. 봉이를 만나 속초의 유명한 오봉식당에 가서 게장백반을 먹었다.

    홍게에 된장을 풀어 삶은 건데

    단촐하고 소박하고, 구수한 맛이다.

    정신없이 먹었다. 이렇게 맛나다니.

    앞으로 속초 하면 떠오를, 그런 음식이 되었다.

    봉이와 헤어져 버스를 타고 춘천 시외버스터미널에 도착.

    슬리퍼에 쓸려 발가락에 물집이 잡혔다.

    터미널과 붙어 있는 이마트에 들어가 플랫슈즈와 발목스타킹을 샀다.

    발이 한결 편하다.

    비가 온다.

    성식이형 보러 간 김에 피부과에 들러 약을 타고

    전에 점 뺀 것 사진비교 해보고.

    술 한 잔 하려고 성식이형을 만나러 간건데,

    어휴.

    이 냥반 아이들에게 수족구병을 옮아 얼굴이 반쪽이다.

    이 형님 얼굴라인을 본 게 16년 만이다. *_*

    술은 포기하고

    석사동에 가서 우아하게 파스타와 핏자, 샐러드를 먹었다.

    성진이형이랑 통화했다. 다음엔 연락하고 오라고

    술은 당신이 사주마고 하신다.

    (맨날 사시니까, 부담스러워 연락을 못하고 가는 겁니다.)


    술도 못마시는 재미없는 병자는 일찌감치 집에 들어가 쉬라 하고

    7시 40분 전철을 탔다. 아.. 오늘은 밤새 마셔줄 수 있었는데..

    춘천역. 십년전 이 역은 이 모습이 아니었다.

    서상리의 폐교에서 겨울을 날 때 란이와 함께 주말마다 이용했던 역.

    서상분교와, 스쿠터와, 얼음이 꽁꽁 얼었던 계곡과

    물고기 사냥을 하던 고양이 장수가 떠오른다.

    밤이 되면 창밖에 하얗게 빛나던 섬뜩한 이승복 동상도.


    집에 와 간단히 짐을 챙기고 다음 날 아침, 봉하마을로 갔다.

    끝없는 차량, 끝없는 사람들.

    결국 마을까지 40분을 걸어야 했다.

    2 MB 18nom 때문에,

    살아 생전에는 내가 좋아하지 않았던, 좋아하지도 싫어하지도 않았던 관심 밖의 사람,

    나랑은 아무 인연이 없었어야 할, 저 멀리 저 높은 데 있던 전직 대통령.

    2 MB 18nom 때문에,

    차로 5시간을 달리고 40분을 걸어 들어가는 길.

    이 많은 사람들이. 오늘같이 좋은 봄에.

    여느 때와 다름 없는 한적하고 무료한 주말 밀린 드라마 몰아보기를 하고 있었을 이 시간에

    이 자리에 있다.


    김제동은 결국 사람을 울렸다.

    하긴, 울 준비를 하고 있던 사람들이니까..


    혼자 여관방에서 자는 건 처음이다. @_@

    학교 다닐 때 술퍼마시고 남녀구분없이 섞여 자던 방이랑

    답사 다니면서 퉁퉁 부운 다리 쉬며 야한 방송 틀어놓고

    친구들과 낄낄대던 방이랑

    다른,

    무섭고, 두리번거리게 되는, 혼자 쓰는 여관방.

    다신 가고 싶지 않아. @_@;;;;;


    전직대통령의 묘역을 꾸미고 있는 박석에서

    낯익은 이름 발견.


    부엉이바위.

    빗장에 누군가 국화꽃 세 송이를 걸어놓았다.

    사저와 마을이 한 눈에 내려다보인다.

    또 왈칵. 눈물이 난다.

    어떤 생각으로, 어떤 마음으로 이 길을 걸었을까.


    아침은 소고기국밥.


    나는 그를 좋아하지 않았다.

    정치하는 사람은 다 똑같다.

    그도 정치하는, 똑같은 사람이었을 뿐이다.

    한 때 그를 위해 그림을 그렸던 적도 있지만,

    그를 지지해서가 아니라, 내 선배와 선생님들이 그를 지지했기 때문이었다.


    참으로 힘이 없는 사람이 욕심을 냈다.

    사람 사는 세상이라니


    하지만 그 덕에

    우리가 이만큼 또

    꿈을 꾸는 거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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